서울 도심 밝힌 사상 최대 100만개의 촛불 / ⓒ 사진 = 채널A 캡쳐
지난 12일 서울 도심을 밝힌 100만개의 촛불이 하나된 민심을 보여줬다.
외신들은 이날 서울 광화문 등에서 벌어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 집회를 보도하며 "시위대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컸지만 매우 평화로운 방식으로 시위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비선 실세’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 주말 촛불집회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였다. 주최 측이 추산한 참가자는 100만명, 경찰은 26만명이다. 촛불집회로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다.
2008년 6월10일 광우병 촛불집회(주최측 추산 70만명, 경찰 추산 8만명),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시위(주최 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13만명) 참가 인원을 넘어섰다.
이 규모와 비슷한 역대 집회로는 100만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진 1987년 6·10항쟁이 있다. 촛불집회가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효순·미선양 추모집회에서시작한 점을 고려하면 촛불집회로는 사상 최대다.
규모 뿐 아니라 평화 집회로도 역사에 남을 날이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집회가 열린 서울시청광장, 광화문광장, 율곡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외치며 청와대를 향해 분노어린 목소리를 냈지만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내자동 로터리에서 시민들과 경찰의 간헐적인 충돌 외에는 집회는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오후부터 펼쳐진 문화제도 외신들이 주목한 독특한 시위 형태였다. 방송인 김제동·김미화, 가수 이승환·정태춘·조PD 등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발언, 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이후에는 광장 일대에서 텐트 농성과 시민 자유발언 등으로 다음날까지 ‘난장’ 행사가 이어졌다.
1년 전 민중총궐기에서 참가자와 경찰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이어지면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끝내 숨졌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변화이다. 가족이나 연인, 중고생 등 집회 주축층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점도 시사점이 있었다. 집회 후 풍경도 과거와 크게 달랐다. 시민들은 바닥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는 것은 물론 바닥에 떨어진 촛농까지도 휴대전화 손전등으로 비추며 긁어냈다.
한 외신은 “학생, 가족, 젊은 연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이 참가한 평화 시위가 열렸다. 과거 노동조합과 시민 단체가 이끈 일부 폭력 시위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고 전했다. 100만개의 촛불과 100만 민심의 평화로운 외침이 대한민국 집회역사에 의미있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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